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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와 인문학의 만남이 미래를 디자인 한다] #1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있어라

[IT와 인문학의 만남이 미래를 디자인 한다] #1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있어라

–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은 인간중심 사상에서 나온다

1982년, 맥킨지 소속의 유능한 컨설턴트 톰 피터스는 [초우량 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이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굴지의 미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이 분석서를 통해서 피터스는 세계적인 경영 대가라는 명성을 얻었고, 이 책에서 그는 한 기업이 미래에도 계속 생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를 제시했습니다. 그가 제시한 필수 요소로는 고도의 혁신력, 기술적인 탁월함, 작업 효율성, 독보적인 가치창출 모델, 강력한 비전 같은 요소들이 포함되었습니다.

당시 피터스는 1980년대 초에 미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43개 대기업을 연구했습니다. 여기에는 약 25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US스틸이나 전 세계 비디오 게임 시장을 평정하고 있던 컴퓨터 회사 아타리(Atari) 같은 기업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책이 출판된 지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그들이 찾아낸 초우량 기업의 3분의 1 정도가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10년이 흐른 후에는 책에 실렸던 기업이 절반 정도가 보잘것없는 처지로 전락했거나, 다른 기업에 매각되었거나, 아니면 아예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렸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컴퓨터 개발 업계에서 논의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세계 챔피언이었습니다. 반면 애플과 구글은 강력한 주류 산업의 가장자리에 붙어 있는 구멍가게에 불과했습니다. 엊그제까지만 하더라도 노키아가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고, 카메라와 필름 회사인 코닥 같은 거대 기업은 고작해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브랜드 정도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현재 세계 경제를 들여다보면 거대한 대기업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경제가 어떻게 존속할 수 있는 걸까요? ‘지속성’과 ‘혁신’은 기묘한 방식으로 서로 모순을 일으키는 개념들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경영의 대가들이 제시하는 모델이나 비전의 논리에서 비롯된 모델이 아닌, 뭔가 다른 모델이 필요합니다. 경제의 미래는 지속성보다는 오히려 단절과 일탈, 오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물건 대신 고객의 마음을 읽고 창의성을 팔아야 한다
고객의 마음을 읽는 것을 표현한 이미지

아타리 쇼크란 말을 혹시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1983년 북미 비디오 게임의 공급과잉으로 소비자의 흥미가 떨어져 수요가 급감하며 게임업계의 가치가 폭락한 사건을 말합니다. 퐁을 통해 비디오 게임을 비즈니스로 성공시킨 인물이자 게임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놀란 부시넬은 아타리라는 회사를 만들고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기 아타리 2600을 9개의 론칭 게임과 함께 발매했습니다. 그는 공격적인 경영을 위해서 회사를 워너에 매각했으나 워너와의 불화로 회사를 떠나고 맙니다. 이후 아타리의 CEO가 된 레이 키사르는 특유의 마케팅으로 아타리 2600을 거대한 괴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게임은 수백만 장씩 팔려 나가 크게 수익을 내지만 게임 개발자에게 돌아오는 돈은 너무나도 적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타리를 인수한 워너의 경영진들은 특이하게도 단 한 명도 게임을 하지 않을 정도로 게임에 문외한이었던지라 당시 게임 개발자들의 가치를 우습게 보았고, 자연히 아타리 개발자들을 엄청나게 푸대접합니다. 워너에 인수된 뒤로부터 자유분방했던 생활에 일침이 가해져 사내의 기강 단속은 물론 게임 제작자들의 복장과 근무 시간을 철저하게 관리하게 되었고, 이전의 자유로운 풍토 속에서 만들어지던 참신한 게임들이 점차 사라지고 구태의연한 졸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물건만 팔려고 했던 워너의 아타리는 개발자의 창의력을 뺏는 바람에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는 참신성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1980년대 초 비디오 게임을 평정했던 황금기를 마감하게 되면서 대부분의 게임업체들은 연쇄 도산을 하게 됩니다. 오늘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창의력을 바탕으로 고객의 마음을 끊임없이 읽어낸 덕분에 세상을 지배하게 된 구글의 기업문화와는 매우 대조되는 현상입니다.

기술 만능주의에서 인간의 따뜻함을 생각할 때이다
인간의 따뜻함을 표현한 이미지

우리는 기술이라 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멋지고, 획기적이고, 숨 막힐 정도로 근사한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합니다. 하기야 실제로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작가 윌리엄 깁슨도 다음과 같은 근사한 말을 남겼습니다. “미래는 이미 오래전에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다만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을 뿐이다.”

‘무어의 법칙’이 있습니다.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처리 속도가 18개월 주기로 두 배씩 빨라진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기술 진보를 가리키는 관용구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이 공식을 우리 주변에서 슈퍼 테크닉은 질병과 유한성, 고통 등 모든 힘겨운 상황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줄 저 초월적인 하이퍼 테크놀로지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하며, 조만간 인공지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컴퓨터는 체스 게임을 할 수 있고, 퀴즈도 풀 수 있습니다. 자동차들도 스스로 주행하고 주차까지 할 수 있습니다. 냉장고는 샐러드와 육류를 각기 적합한 온도로 저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지능적인 것인가요? 만약 우리가 지능을 퀴즈 풀이, 주차, 샐러드 냉각 기술 따위로 정의한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지능 개념이 기술 만능주의적인 특징을 띤다는 걸 알려줄 따름입니다.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를 들이대면서 작동 능력을 지능과 혼동하는 형태에서는 분명한 한 가지 특징이 드러납니다. 다름 아닌 ‘의인화’입니다. 태곳적부터 인간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무생물 세계를 의인화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초월적인 존재를 믿을 때 그런 것처럼, 기계에 대해서도 매우 열정적이고 고집스러운 태도를 나타냅니다. 기계가 어떤 식으로든 ‘독자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인간 존재의 가장 심오한 핵심을 규정하는 대상, 즉 고통으로부터 마침내 우리 인간을 해방시켜줄 수 있는 마력이나 선한 영혼, 정령, 신이 기계 속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주 탄생 이론의 최고 권위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공지능이 지구의 멸망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테슬라모터스의 회장인 엘론 머스크는 “인공지능이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것이다.”라고 말하며 기술 만능주의가 가져올 위험에 대해 경고한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혁신은 새로움이 아닌 융합과 인본주의에 바탕을 둬야 한다
기술과 사람을 표현한 이미지

기술 진화의 속도는 저절로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혁신에 관한 연구에서 최근 제시한 명제에 따르면, 앞으로 혁신 과정은 위대하고 획기적인 발전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지식과 경험의 종합. 결합. 혼합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우리는 물리적인 세계의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흔쾌히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혁신 과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본질과 방향 그리고 추진력은 불가피하게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컴퓨터 용량이 커질수록 소프트웨어 개발 속도가 느려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프로그램 크기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오류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유전자기술과 나노기술 또는 핵기술과 융합기술 등 미래기술 연구비용이 점진적으로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이 비용을 모두 회수하는 데 걸리는 기간도 점점 더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기술 주기 역시 점점 더 느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엄청난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으로 분열된, 자극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침체기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침체 현상은 무엇보다도 기술 분야에서 더욱 뚜렷합니다. 새롭게 고안된 정보기술 장치들은 결코 백 년 전에 전깃불, 냉장고, 가스오븐이 그랬던 것만큼의 변혁 효과를 불러일으키지 못 합니다. 전화와 스크린, 자판이 한데 결합된 장치가 과연 단순한 전화기나 TV, 타자기만큼이나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자동차 산업은 좀 더 효율적인 연소엔진을 만들어내는 일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동차 업계의 이 같은 엄청난 노력 탓에 수소엔진이나 전기엔진 같은 대체동력이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소엔진이 새로운 동력의 등장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에너지 공급 부문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세기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1930년에 개발된 가스터빈과 1890년에 고안된 디젤엔진이 전기 생산의 토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기술사 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조나단 휘브너는 기술 발전의 역사를 나무에 비유했습니다. “나무줄기가 있고, 역학과 과학이라는 굵고 근사한 가지들이 있다. 언제쯤인가 이 나무는 다 자라버렸다.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작은 가지들의 특징을 부각시키는 일이다. 모르긴 해도 기술이 이룩할 수 있는 일에는 자연적인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수천 개에 이르는 발명품과 특허를 분석한 휘브너는 기술 발전이 1870년경에 이미 정점에 도달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디지털 시대 옹호자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합니다. “어떤 병에 걸렸을 때, 두 시간 동안 인터넷 서핑을 하고 나면 의사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변호사와 교사 자동차 딜러 또는 고객센터 직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실입니다. 정말이지 이런 직업들은 이제 전혀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위한 것인가요? 그리고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요? 여전히 우리는 세계의 면면을 모두 해독하지도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지 모릅니다. 나노 기술을 이용하여 제작한 소재와 물건들이 우리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 또한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기술 전선의 모든 부분에서 저항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기술로는 그 문제들을 아예 해결할 수 없거나 부분적으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도 이런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예견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궁극적으로 하이퍼 테크놀로지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 합니다. 우리는 늘 기술의 맥락 문제보다 기술의 가능성을 과대평가하는 우를 범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만약 어떤 기술이 정말로 초인간적인 것으로 증명된다면 우리는 신속하게 그 기술을 거부해버릴 것입니다.

이상옥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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